정리 : 110111님 Cm
기남시티, 이 도시의 한구석에는 벨린이라는 아이가 남모를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7 살이라는 어린 나이였지만, 벨린은 자신의 마음이 보통과 다르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은 벨린에게 보금자리가 되어야 할 집에서조차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이었습니다.
벨린의 부모님은 도시에서 존경받는 포켓몬 박사였습니다. 뛰어난 학자로서의 명성과 깔끔한 이미지는 그들에게 세상 전부나 다름없었죠. 그들은 벨린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지만, 혹여라도 진실이 외부에 알려져 자신들의 명예에 생채기가 날까 우려하였습니다. 자식의 아픔을 품어 주기보다 주변의 시선과 위신을 우선시했기에 벨린에게 어떠한 지지도, 이해도 베풀어 주지 않았습니다. 집은 자신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장소가 아닌 외로운 알섬과 같았습니다.
기어코 벨린은 생각했습니다. 숨 막히는 집 안에 외로이 갇혀 있는 것보다 차라리 바깥에서 푸대접받는 것이 백배 낫다고. 그러나 밖은 생각 이상으로 냉담했습니다. 또래 아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듯한 성격, 분위기인 벨린의 모습은 사람들의 눈에 띄었고 쉬쉬하던 혐의는 돌차간 확신이 되었습니다. 도시를 그득 채운 소문과 따가운 목용은 벨린을 다시금 우울하게 만들었습니다. 벨린은 색안경을 낀 인파 사이에서 하루하루 깊은 고독을 배우며 감인해야 했습니다.
어른들은 벨린을 보면서 수런대고 또래 아이들은 노골적으로 벨린을 특이한 괴물처럼 취급하며 꺼려했습니다. 기중 유달리 적의를 드러내던 한 무리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벨린을 괴롭히는 데 아무런 구실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그냥 존재 자체가 그들의 심심한 시간을 달래주는 터그 놀이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의 괴롭힘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갔습니다. 벨린은 나날이 학교나 공원에서 이 무리의 표적이 되어야 했으며 궁지에 물린 쥐처럼 난행을 견뎌야 했고 해진 인형만을 무이한 안유로 삼아야 했습니다.
된불이 되었던 사건은 북적이는 큰 도로변에서 시작됩니다. 벨린은 그 무리에게 포위되어 일방적인 구타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어린아이가 폭력을 입는 상황에서 어른들은 천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도외시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못 본 척 서둘러 자리를 떴고, 또 어떤 사람은 쳐다보고도 기어이 고개를 돌리며 등한시하였습니다. 그 순간 벨린은 도시 사람들이 자신을 기피하고 있다는 극도의 공포와 쓸쓸함을 느꼈습니다. 한마디로 벨린의 넋은 이미 이 도시에서 처절하게 밟힌 것입니다.
한편, 시외를 전전하며 지내던 카라스바라는 고아가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이 주는 푸대접을 익히 증험한 터라 변두리에서 외따로 머무르는 동안에도 존립을 위해 늘상 경계심을 미루지 않았으며 흉흉한 소문과 시선에는 강 건너 불구경인 것처럼 굴었습니다. 개중에는 도시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벨린에 대한 험담과 소문들을 몇 번 들었지만 자신의 처지 역시 썩 좋은 편이 아니었기에 어설픈 오지랖을 부려 더 큰 문제에 얽히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카라스바가 평소처럼 도시를 지나가다가 도로변의 모진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고약한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맞고 있는 작은 아이. 그리고 그 품에 갈가리 찢긴 낡은 인형을 끌어안고 필사적으로 아픔을 감내하는 벨린의 모습이 카라스바의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이는 여러 방향으로든 가슴에 큰 뇌동이 내리꽂힌 기분이었습니다. 찢어진 인형이 자그마치 카라스바 자신의 지금 모습 같았습니다. 측은지심과 더불어 저토록 고달픈 상황에서도 인형을 놓지 않는 아이에 대한 묘한 호기심이 자저하는 낌새를 깨트렸습니다.
카라스바는 주저없이 자신의 파트너 마디네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마디네는 곧장 아이들의 주의를 흩뜨리고 예상치 못한 방해에 놀란 무리는 이내 도망가듯 자리를 떠났습니다. 벨린은 구제되었고 카라스바는 잠잠하게 상황을 갈무리 지었습니다.
괴롭히던 아이들이 완전히 물러난 후에도 카라스바는 한동안 그 자리에 쭉 서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혼자였던 카라스바는 은연중에 벨린이 자신과 비슷한 외로운 처지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을 알아봐 주길 바라는 작은 기대를 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벨린은 경황없이 얻어맞은 충격과 통증 속에서 그대로 요절난 헌겊과 솜을 가슴에 안고 흐느끼기에 바빴습니다. 설움이 터진 벨린의 곁에서 카라스바는 끝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떠나야 했습니다. 벨린에게는 그저 마디네라는 포켓몬의 도움만 기억에 남았을 뿐, 그 뒤에 누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 후 며칠 동안 카라스바는 벨린을 쫄쫄 쫓아다니는 생활을 했습니다. 물론 벨린에게 들키지 않도록 은연중에. 그는 벨린의 일상을 보살피면서 구박당할 때마다 마디네에게 명령하여 구해주도록 했습니다. 마치 벨린의 보디가드인 양 운신하고 멀리서나마 수호하는 것이 카라스바에게는 유일무이한 위문이자 의무감 같은 것이었습니다.
며칠 후, 벨린이 평소처럼 오솔길을 따라 걷는데 이날은 담력을 기르기 위해 용기 내어 허공에 소리를 질렀습니다. 외침은 벨린의 내면을 나타내기 위한 큰 시도였으나 불운하게도 벨린이 이 오솔길을 종종 거닌다는 것을 진즉에 알고 있던 그 무리가 재차 나타나 벨린을 가로막았습니다. 이번에는 아이들의 핍박이 이전보다 더욱 끔찍해져서 돌와았으므로 벨린의 메아리를 조롱했고 난행은 벨린의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도 짓뭉갰습니다.
이때 카라스바는 드디어 벨린에게 말을 걸어볼 용기를 얻은 참이었습니다. 그는 매번 생채기를 달고 사는 벨린에게 작은 위로라도 건네고 싶어 밴드를 사서 벨린이 자주 오는 오솔길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찰나에 평소보다 흠씬 무참하게 뭉개지고 있는 벨린의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카라스바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채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가 충격을 받은 이유는 외곬으로 폭력의 세기가 모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벨린은 저토록 절망적인 상황 속에 놓여 있는데 자신은 고작해야 친해질 생각이었다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설렜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한없이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벨린의 앞에서 자신의 작은 소망은 너무나 가볍게 느껴졌고 주저앉은 아이에게는 죄스러운 것을 넘어서 죄악감이 몰려왔습니다.
카라스바는 곧장 마디네에게 부탁해 벨린을 구하도록 했습니다. 괴롭히던 아이들이 달아난 후 카라스바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벨린에게 달음질쳤습니다. 상처 입은 아이를 제대로 마주할 용기를 잃은 채 상처투성이인 무릎 앞에 사 온 밴드 꾸러미를 툭 던져 놓았습니다. 그때 마침 햇볕이 숲의 졸가리 사이를 뚫고 들어와 카라스바의 얼굴에 강하게 내리쬐어, 그의 얼굴을 빈틈없이 가리고 있었습니다. 벨린을 도와주는 카라스바는 영영 볕에 숨어 여지껏 이름 모를 은인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맞아서 얼굴이 부풀고 눈꺼풀은 뜨지도 못하는 벨린이 힘겹게 얼굴을 들어 올렸습니다. 자신을 도와준 사람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보이지 않는 시야와 눈부신 일광 때문에 끝내 카라스바의 얼굴을 살피지 못했습니다. 밴드만을 남긴 채 카라스바는 복잡하고 감내하기 어려운 감정을 안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나야 했습니다.
이후 카라스바는 기남시티를 떠나 포켓몬에 진심인 플라드리를 따라 도시를 떠나게 되었고 벨린 역시 자신을 이해해 주는 다정한 할아버지의 집으로 가기 위해 부모님의 곁을 떠나면서 두 아이의 인연은 끊기는 듯했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로 각자의 삶 속에서 남과 남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카라스바는 플라드리 밑에서, 벨린은 할아버지의 보살핌 속에서 각자 다른 방식으로 성장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벨린은 성장했고 16 세의 어린 나이에 월등한 실력을 인정받아 지역 리그의 사천왕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벨린은 자신의 뛰어난 포켓몬 배틀 실력으로 세상의 편견에 맞서는 표상적 인물이 되었습니다. 소식은 TV를 통해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도 뉴스를 즐겨 보던 카라스바는 스크린의 결연하게 돋보이던 벨린을 단결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카라스바는 어린 시절처럼 멀리서 벨린을 열원하는 지지자가 되었습니다. 때때로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구석빼기를 찾아 남몰래 벨린의 시합을 보러 가기도 했고, 때로는 중계를 통해 벨린의 승리를 기꺼워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조용하게 벨린의 성공을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하였습니다.
벨린이 20 세가 되던 해에 돌연 사천왕 자리에서 내려왔습니다. 뜨거운 배틀보다 상처 입은 포켓몬을 돌보고 치유하는 따듯한 일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벨린은 자신을 찾는 과정에서 나약한 존재들을 보듬는 것의 가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천왕 은퇴 소식이 전해진 밤, 카라스바는 자신의 파트너인 펜드라 와 함께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TV에서 벨린의 시합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카라스바는 스크린을 응망하면서도 어딘가 공허한 안채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여전히 어린 시절 오솔길에 두고 온 벨린에게 머물러 있었습니다.
파트너의 복잡한 마음은 금방 펜드라에게 들통이 났습니다. 이내 펜드라는 카라스바 몰래 기남시티로 향하게 됩니다. 뛰어난 감각을 가진 더듬이를 이용해 벨린의 위치를 정확히 잡아낸 뒤, 은퇴 후 운영 중인 포켓몬 보호소로 찾아갔습니다. 펜드라는 본능적으로 카라스바가 조만간 자신을 찾아올 것을 알고 있었기에 보호소에 머물며 묵묵히 기다리게 됩니다. 벨린은 보호소를 찾아온 펜드라를 보고 묘한 익숙함을 느꼈으나 이 포켓몬이 과거 자신을 구해줬던 마디네라는 것은 짐작 채 하지 못했습니다.
펜드라가 사라진 후 딱 3 일이 지나고 카라스바가 수하들과 보호소로 찾아오게 됩니다. 펜드라를 찾기 위함이었지만 보호소 문 앞에서 벨린과 마주치자 카라스바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크게 경혹한 기색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랜 시간 다듬었던 버릇대로 곧바로 표정을 고칩니다. 당연 벨린은 그의 동요를 보지 못했으나 카라스바와 펜드라를 보고 있자니 기시감이 들었고 점차 익숙한 벨린의 기억에서 아득했던 단편 하나가 맞춰지게 됩니다.
카라스바는 펜드라를 데리고 서둘러 보호소를 떠나려 했습니다. 하지만 사색하던 벨린이 머리를 정리한 듯 웃는 낯으로 카라스바를 불러 세웠습니다. 벨린의 기억에는 여전히 카라스바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직감은 이 남자가 자신을 구해줬던 아이라는 걸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볕에 가려져 얼굴을 보지 못했던 그 은인, 그리고 지금 눈앞의 청년이 동일 인물임을 깨닫습니다.
카라스바는 벨린의 예상치 못한 확신에 다시 한번 괄목했으나 이내 짧은 미소로 인사를 건네게 됩니다. 벨린은 비로소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뒤에 있던 존재가 누구인지 알게 된 것입니다. 맞느라 정신이 없었다는 것을 이유로 저를 구제하던 마디네와 파트너가 있었다는 사실을 13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된 것에 대해 감동과 미안쩍은 마음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유장한 세월 동안 그쳐 버린 두 사람의 인연은 펜드라로 인해 다시 이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벨린과 카라스바는 어린 시절의 외로웠던 기억과 현재의 삶에 대한 회포를 풀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벨린은 카라스바에 대해 호기심이 일어서 그가 현재 지내고 있는 미르시티를 빌미로 가이드를 부탁하게 됩니다. 현재의 벨린은 과거와 다르게 거침없는 여자였기 때문에 카라스바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참맘을 내비칩니다. 당연 벨린의 마음을 읽은 카라스바는 내심 유열하였습니다. 그러나 금방 타산적으로 녹청파 관련 일을 도와줘야 한다는 내약을 걸게 됩니다. 그러면 미르시티의 가이드를 자처하고 모든 것에 어울려 주겠다고. 이는 벨린을 일생 후미진 곳까지 초연하겠다는 카라스바의 숨겨진 발언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복잡하고 새로운 관계가 시작될 여지를 남긴 것입니다.